09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
2025.9.4.
교환 논리와 시장경제의 빈틈에 숨은 인간다움의 가치를 찾아보는 시간으로 증여와 선물에 대해 공을 들여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오늘날엔 둘 다 가치가 있는 것을 대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는 것을 말하지만 법적(세법적) 취급은 많이 다릅니다.
모스는 <증여론>에서 '사회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노동자들이고 그들이 임금을 받았다고 해서 사회가 그들에게 진 빚이 청산되는 것은 아니며, 노령이나 실직 상태인 이들에게 사회가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복지국가 체계를 만드는 기초와 다르지 않더라고요. 마오리족의 '하우(hau)', 북서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포틀래치(potlatch), 파푸아뉴기니 섬 동남쪽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쿨라(Kula) 원정 등 학자들이 관찰하고 연구한 '증여'의 형태와 의례, 의미를 탐색하는 시간도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증여' 중에서도 순수 증여, 즉 이해타산을 넘어 선(등가교환이 불가능한) '선물'에 주목하였고, 선물로 형성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진정한 증여(선물)는 주는 행위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되고 그 사람은 새로운 증여의 전달자가 되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나는 사랑하노라. 아낌없이 선사(선물)하는 그런 영혼을 지니고 있는 자를.
그는 감사하는 마음을 바라지 않고, 되돌려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늘 선사하고 되돌려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0 돌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25.9.11.
돌봄이란 무엇이며,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편적인 돌봄이 왜 필요한지, 나아가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칙이 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봄노동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생물학적 재생산, 음식과 주거의 제공, 교육, 의료, 그리고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모든 과정을 일컬어 요즘은 '사회적 재생산'이라고 한답니다.
가정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되거나 시장에서 저임금으로 거래되는 등 체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적으로도 여성에게 전가되어 왔던 배경을 살펴보았는데요.
현재 당면한 '돌봄의 위기'를 풀어나갈 해법으로써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즉 '보편적 돌봄'에 대해 짧게나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인간의 삶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대하고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존재하는 이 '돌봄'의 신성한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11 억압받은 자들에 대한 애도의 현재화는 희망이 될 수 있는가?
2025.9.18.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발터 벤야민의 기억의 정치학으로 다시 읽어보고 과거-기억-애도가 갖는 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루스트의 '홍차와 마들렌'으로 대표되는 '기억'(비자의적 기억, 우연한 계기로 불현듯 되살아나는 기억)을 화두로 하여,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경험의 역사철학적 인식으로 전환하는 벤야민의 '회억'이 기억에 남습니다.
벤야민은 지배자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승리자들의 역사', 즉 역사주의를 비판하는데, 벤야민의 '회억'(기억의 정치학)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을 넘어, 기억을 현재의 정치적 투쟁과 구원으로 연결하는 실천적 개념이었습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만가만 다시 읽히는 날이었습니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한강,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 중에서
12 인간다움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서
2025.9.25.
인간다움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 던졌던 질문을 톺아보고, 참여자의 에세이 발표와 함께 소감을 나누며 3개월 동안의 치열했던 지혜학교 <공존의 지혜2>를 마무리 했습니다.
" 열세 살부터 스무 살까지 네 명의 아이들과 홈스쿨링을 하고 있어요.
매번 여러 과목 공부를 하면서 함께 이야기할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곤 하는데요.
마침 이번 <공존의 지혜2>에 참여하면서 인간다움의 보편적 가치를 찾는 키워드가 너무 와 닿았어요.
결석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먼저 강의를 듣고, 집에 가서는 똑같은 주제로 네 명의 아이들, 남편과 나까지 여섯 명이서 우리의 눈높이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알 듯 말 듯한 주제들이지만 시간을 내어 이야기 나누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참여자 소감 중에서